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멕시코 전쟁 (문단 편집) == 전개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emember_Your_Regiment,_U.S._Army_in_Action_Series,_2d_Dragoons_charge_in_Mexican_War_1846.jpg]] 개전과 동시에 리오 그란데의 국경에서 미군이 일제히 강을 건너며 공세를 개시했다. 당시 멕시코 북부 건조 지역은 점과 선 형태로만 행정력이 닿던 수준이었고[* 상황이 이랬으니 미국인 이민자들이 마음 놓고 들어와서 대놓고 멕시코 정부의 명령을 무시할 수 있었다.] 멕시코의 인구와 산업이 밀집되어 있던 중부 지역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편이었다. 개전 초기부터 여러 주요 전투에서 미군에게 패배하면서 사실상 국경방위는 실패한 상황이었다.[* 수십명 단위 소규모 전투에서는 멕시코 비정규군 기병들이 미군을 상대로 전과를 올리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대규모 전투는 전부 다 패했다.] 굳이 북부 지역만이 아니라더라도 인구도 적고(당시 멕시코는 890만, 미국은 2,320만) 장비나 훈련 면에서도 뒤떨어지는 [[멕시코군]]이 미군의 전면공세를 저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개전 초 미국의 공세는 [[캘리포니아]]에 초점을 맞추었다. 7월 7일 미 해군 [[프리깃]]과 [[슬루프]]함이 몬테레이에 지상군 일부를 상륙시킨 것을 시작으로 전면적인 공격이 시작되었으며 멕시코는 캘리포니아의 미국 정착민들의 대반란으로 인한 [[캘리포니아 공화국]] 건국까지 겹치며 이내 수세에 몰렸다. 게다가 미군을 요격하기 위한 멕시코군의 반격이 미국의 테일러 장군에 의해 좌절되었으며, 이내 로스 앙헬레스(로스 앤젤레스)가 포위되었다. 12월 16일에는 [[애리조나]]의 주도 [[투손]]이 함락되었으며 1847년 초에 [[캘리포니아]]에서 [[애리조나]], [[뉴멕시코]] 전역에서 미국의 승리가 확실시되었다. 태평양 출구를 확보했음에도 멕시코가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멕시코 본토로 본격적인 공세를 개시했다. 압도적인 해군 전력을 활용한 미군은 멕시코 영토 남단이며 수도 멕시코 시티의 동쪽에 위치한 최대항구 [[베라크루스(멕시코)|베라크루스]]에 지상군을 기습적으로 상륙시켜 베라크루스를 함락했다. 그 다음엔 제2전선을 형성하여 멕시코 시티로 진격하기 시작했고 주력부대도 이에 호응하여 북쪽에서 남하하기 시작했다. 멕시코 측에서는 미국이 멕시코 중부로 내려오면 [[아이티 혁명]] 이후 [[아이티]]를 재차 침공했던 프랑스군마냥 질병으로 떼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애초에 배멀미를 앓으며 섬나라에 온 아이티 침공 당시 프랑스군과 달리 보급체계가 잘 갖추어졌고 별 저항을 받지 않고 멕시코 북부 영토를 뚫고 온 미군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파일:external/3.bp.blogspot.com/Battle%2Bof%2BChapultepec%2B-%2BMexico%2BCity%2B1847.jpg]] 1847년 9월 13일 수도 [[멕시코 시티]]의 관문인 차풀테펙 전투에서 멕시코 수비군이 약 2,600명에 달하는 인명피해를 내며 참패하여 마지막 방위부대마저 붕괴된 반면 미국의 공격부대는 불과 200여 명의 피해를 입었고 지체 없이 수도 멕시코 시티로 침공했다. 결국 9월 15일 멕시코군과 민병대의 결사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시티가 함락되어 멕시코 정부는 피난갔으며 멕시코군은 포로 포함 약 7,000명의 인명피해를 내면서 재기불능에 빠졌다. 사실상 이 전투로 전쟁의 승패가 확실하게 갈렸다. 미 해병대 찬가(Marines' Hymn)의 첫 구절 "몬테수마의 궁전에서 트리폴리의 해변까지(From the Halls of Montezuma, To the shores of Tripoli)"에 나오는 '몬테수마의 궁전'이 바로 이 차풀테펙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선 6명의 멕시코 유년 사관생도들이 끝까지 저항하다가 전사했고 멕시코에선 이들을 "소년 영웅(Niños Héroes)"으로서 현재까지도 기념하고 있다. 멕시코에선 이후에도 군인은 물론 국민들까지 들고 일어나 결사항전을 지속했지만 미군이 계속해서 공격해오면서 각지에서 계속 참패만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멕시코에게 피해만 늘어나며 불리해졌다.[* 멕시코 군대와 민병대의 게릴라전을 미군이 초토화 전술로 무력화했다. 이 초토화 전술에서 멕시코인들에 대한 살인, 약탈, 강간, 방화가 흔하게 일어났다.] 이렇게 더는 승산이 없고 미국의 점령지만 늘어나는 꼴이 되자 결국 멕시코 정부는 항전을 포기하고 항복이나 다름없는 협상을 미국에 제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